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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  사비시대(부여)  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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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관식 (무령왕릉 출토) 금제뒤꽃이(무령왕릉 출토) 허리띠장식(무령왕릉 출토) 금동제신발(무령왕릉 출토)

나성

부여나성

나성은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외곽성으로서 현재의 부여읍을 감싸며 원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 부소산성에서 시작하여 도시의 북쪽과 동쪽을 보호하고 있다. 나성은 방어의 기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수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나성-여름-동 측면

부여의 서편과 남편은 금강이 자연적인 방어시설로 기능하였고 자연제방이 성벽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하지만 동쪽의 경우 산지 사이로 평지가 분포하므로 인공적인 시설물이 필요하였다. 나성은 고고학적 조사 결과 총 6.3㎞의 구간이 확인되었다. 나성은 북나성과 동나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나성은 부여 북단에 자리한 부소산성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청산성의 외곽을 돌아 석목리에 이른다. 동나성은 석목리에서 염창리까지이다. 북나성은 백제 멸망 후 그 기능을 상실하여 현재 육안으로 성벽이 확인되는 구간은 많지가 않다. 그렇지만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성벽이 고고학적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되면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나성은 현재도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20여 년간의 고고학적 조사를 통하여 축조 시기, 성벽의 축조기법, 문지를 비롯한 시설물 등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나성은 산성과는 다른 유형으로 산지와 평지를 연결하여 수도의 외곽을 둘러싸는 새로운 형태의 성곽으로 지형에 따라 특이한 축성방식을 채용하고 있는데, 구릉구간과 저습한 평지를 통과하는 구간에 사용된 축성법이 달랐음이 고고학적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먼저 구릉을 통과하는 구간은 성벽 안쪽으로는 흙을 다져 성토한 후, 성벽의 바깥쪽은 산을 깎아 급경사면을 만든 후, 2m 정도 높이로 돌을 쌓아 올려 방어력을 높였다.
하지만 저습지를 통과하는 구간은 지엽부설의 공법과 나무말뚝을 박아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는 공법 등 특수한 축조공법이 적용된다. 먼저 정리된 기반토 위에 직경 5~6㎝되는 나무와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성곽 기저부 외곽선에 맞추어 나란히 깔아 기반토층과 그 위에 성토될 토축층 사이를 차단함으로써 연약한 기반층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나뭇가지를 깐 면 위에는 점질토를 두께 50㎝ 가량 성토한 후 다시 나뭇가지를 까는 공정을 반복하였다. 현재 세 번에 걸쳐 배열된 것이 확인되었는데 지엽부설층과 성토층을 반복하여 쌓아 올린 그 높이가 2m 가량 잔존하여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성벽 안팎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말뚝 박아 고정시킨 흔적이 확인되었다. 말뚝의 크기는 5~10㎝ 가량이며, 각 말뚝사이의 간격은 50~100㎝로 말뚝의 뿌리가 기반토층위에 최초의 나뭇가지를 깔아놓은 층 위에 이르고 있어 수분으로 인하여 성토층이 그 아래층과 잘 결합 될 수 있도록 하고 성벽 외부면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하여 축성한 신공법을 적용한 사례이다.
저지대 통과부분의 축조공법으로 다른 것 중 또 하나는 기초부 면 외부에 석열 또는 적석층 등의 보강시설이 존재하였다는 점이다.

나성-여름-동 측면

부여 지역은 북·서·남의 3면이 금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자연 조건 때문에 부여나성의 정문은 동쪽에 만들었다. 정문에 해당하는 제1동문지는 능산리 왕릉 옆의 평지에서 발견되었다. 성문의 너비는 9.5m이며 장방형 석재를 이용하여 정연하게 축조되었다.
한편 2013년 고고학적 조사에서는 제2동문지가 발견되었는데, 제2동문지는 제1동문지의 북쪽 800m 지점 능선을 타고 북향하던 부여나성이 서북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해발 120m 야산의 정상부로 부여 시내와 멀리 익산의 미륵산까지 조망되는 곳이다.

발굴을 통해 확인된 문지 유구에서 출토된 다량의 기와편과 기둥구멍 등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문루와 같은 건물이 존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