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의 역사  세계유산적 가치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이 아끼고 보존하는 세계유산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서브비쥬얼

금제관식 (무령왕릉 출토) 금제뒤꽃이(무령왕릉 출토) 허리띠장식(무령왕릉 출토) 금동제신발(무령왕릉 출토)

세계유산적 가치

신청유산 경계

신청하는 연속 고고학적 유산의 제안된 경계는 여덟 개의 유적에 대한 국가 사적 지정의 경계와 일치한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경우와 같이 잠재적 OUV가 지하에 있는 유산은 버퍼존이 요구되지 않지만 (Operational Guidelines, paragraph 103; Preparing World Heritage Nominations, Second Edition, 2011, p.84),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청되는 연속유산의 개별 유적을 위한 경의를 표하는 배경(setting)을 유지하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의 품격과 중요성을 지속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적절한 규모의 버퍼존이 제안된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신청기준

  • 기준 (ii) : 건축 또는 기술, 기념비적인 예술, 도시건설 또는 경관설계의 발전에 있어 시간의 범위 또는 세계의 문화적 지역 내의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준다.
  • 기준 (iii) : 살아있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 또는 문명에 대한 독특하거나 적어도 이례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
  • 기준 (iv) : 인류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앙상블, 또는 경관의 뛰어난 예이다.

OUV

백제역사유적지구는 훌륭한 백제문화를 가진 고대 왕조의 수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고고학적 자료들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대한민국의 서쪽 중부지역에 위치한 왕국의 왕궁, 사찰, 능묘와 나성을 포함한 유산의 여덟 개의 유적들(components)은 후기백제의 다른 면들을 보여준다 (AD 475~660). 신청유산은 고대의 시간 동안에 중국, 한국, 일본 사이에서 발달한 활발한 교류에 대한 생생한 증거이다.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도시계획, 건축기술, 미술, 종교를 받아들여서, 더욱 발전시키고, 그 다음에 일본에 전달하였다.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고 한반도에서 번영하였던 독특한 문화적 특성과 전통의 증거는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곳의 불탑과 사찰은 불교의 특징, 진화, 전파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고 왕궁과 연관된 방어벽들은 백제 왕조의 정치, 문화, 종교를 체계화하고 그 왕조로부터 동아시아 전체에 전파된 도시계획인 도성시스템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백제는 AD 57년부터 668년까지 한반도에 존재한 북쪽으로는 고구려 그리고 남쪽으로는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의 하나이다. 백제는 BC 18부터 AD 660년까지 거의 700년을 지속한 최초의 왕조이다. 백제의 연속적인 세 수도들은 세 개의 시기의 역사로 나뉜다: 한성시기, 웅진시기, 사비시기. 한성은 현재의 서울; 웅진은 현재의 공주 그리고 사비는 현재의 부여이다. 신청유산은 AD 475년부터 A660년까지의 웅진, 사비시기와 관련이 있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 세계에서 중심축이 되었다: 중국의 남북조, 한반도에서는 삼국이 통일신라로, 일본열도의 야마토로 통일의 시작을 보였다.

동아시아의 각국은 고대 동아시아의 대단히 풍성한 물질적 문화적 교류(interchange)를 포함한 정치적인 교류(exchange)에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삼국 중에 가장 정교하다고 간주되는) 백제문화가 진정으로 꽃피운 시기는 사비시기이다. 특히, 도성은 이후 1,400년 동안 수도 건설을 위한 동아시아의 우월한 시스템으로서 발전되었고 불교적 신앙은 한반도를 통해 해외의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웅진시기의 수도와 관련된 공주에 위치한 유적지 두 곳을 포함한다 : 금강변에 건설되고 왕궁과 산성으로서 기능하는 공산성과 많은 유물들이 훼손되지 않은 채로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릉을 포함한 14기의 백제 왕실의 왕릉인 송산리고분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또한 사비시기의 도성(성벽으로 방비한 수도)과 관련된 부여에 위치한 유적지 네 곳을 포함한다 : 왕궁의 후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응급시에는 최종 방어시설로써 역할을 하는 작은 언덕인 토루 및 기반인 부소산성; 행정 건물들이 있는 인접한 관북리유적; 사비 수도의 북쪽과 동쪽을 방어하는 6.3km길이의 토축, 석축 외곽성이며 뛰어난 토축기술을 증명하는 부여의 외곽성(나성); 그 당시의 동아시아 전역에서 공유된 사찰의 탑-금당-강당의 가람(layout)와 건설 기술의 중요한 예를 보여주는 정림사지; 그리고 동아시아 무덤양식의 중요한 변천사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능산리고분군.

후기 사비시대의 두 번째 수도(별도)와 백제의 30번째 무왕(600-641)과 관련된 익산의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도 있다. 왕궁리유적은 6~7세기 동아시아 왕궁의 배치의 가장 좋은 예를 보여준다. 삼국 내에서 가장 진보된 건축적 문화적 기술을 증명하는 미륵사지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석탑을 가지고 있다. 종합적으로, 이 여덟 개의 유적들(components)은 백제의 훌륭한 문화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던 시기의 최고의 예를 보여준다.

완전성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는 모든 필수요소들은 왕궁, 사찰, 능묘, 나성을 포함한 신청 연속유산의 135.10ha(헥타르)의 범위 내에 위치해 있다. 신청 연속유산의 경계는 특징의 완벽한 표현과 유산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과정을 적절하게 보장한다. 그러므로 전체 신청 연속유산 그리고 개별 유적 (component)의 완전성은 보장된다. 총 135.10ha(헥타르)로 구성되는 각각 유적의 buffer zones이 제시된다. 신청유산은 개발 그리고/또는 방치의 불리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진정성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위치와 장소, 유형과 디자인, 물질과 실체에 있어 진정성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연속유산의 유형 각각의 고고학적 증거(evidence)(궁, 사찰, 능묘, 나성)는 전부 백제의 훌륭한 문화의 후기시대의 진정성의 증거(testimony)이다.